블록체인, 지금의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대학생 숀 패닝은 룸메이트가 밤새 무료 음악파일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고 MP3 파일을 찾아주는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P2P기반의파일공유 프로그램 ‘냅스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200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가입자가 7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용자들은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도 올릴 수 있었다. 저작권 문제로 이듬해 서비스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운영자의 개입 없이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는 발상은 매력적이었다.
인터넷도 정보가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개방적이면서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확산하면서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정보가 몇몇 플랫폼 사업자로 집중되는 양상이 벌어졌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거대 사업자가 빅 브러더가 되어 정보를 독점하고, 독점한 정보를 이용해 경제 권력을 쥐면서 부가 이들에게로 편중돼 갔다.
정보뿐만 아니라 신용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존재한다. 역사 이래 신용 거래는 중앙 중개기관을 통하는 중앙집중형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구조로 인해 거래가 편중되고, 안정성이 취약해지고, 거래 비용은 필요 이상으로 높아졌다. 중앙중개기관은 중개역할을 독점함으로 또 다른 빅 브러더로 군림해 왔다.
만약 인터넷에 플랫폼 사업자가 없어지고, 신용에 중앙중개기관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그 기술이 이들이 해오던 역할을 대체해 훨씬 잘, 빠르게, 저렴하게, 평등하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정보에서는, 인터넷이 개방적 수평적이 될 것이며, 정보에 대한 권리도 생성자 몫이 되어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래에서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저렴하게 송금을 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합리적 가격에 보험 서비스를 받고, 자선단체에 낸 후원금도 중간에 새지 않고 구호 대상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거래정보를 중앙서버가 아닌 거래 참여자들에게 분산 저장시켜, 누구의 관장도 필요 없이 안전하고 분산된 DB를 생성하고, 그 DB를 자생적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다. 블록체인 위에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얹으면 중앙중개기관의 신뢰 그 이상을 담보하면서도 사람의 개입 없이 거래를 자동화할 수 있다. 이렇게 블록체인은 기존 경제체제의 중개자들을 와해시키는 파괴적 혁신을 가져오고, 나아가 지금 인터넷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터넷 2.0’ 시대를 펼쳐 나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체제 전반을 바꿔 놓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 블록체인이 안고 있는 소비전력, 속도 등의 기술적 문제를 보고, 이것이 마치 블록체인의 최종 모습인 양 생각해, 앞으로 펼쳐질 모습에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비유하면, 이제 겨우 AOL 단계에 이른 정도다. 인터넷을 본격 확산시켰던 웹 브라우저 같은 보편적 툴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AOL에서 야후로 구글로 진화했듯이, 블록체인도 그렇게 진화하고, 이를 대중화하는 툴도 곧 개발될 것이다. 그런 미래 모습을 우리는 그려 보아야 한다.
그런 미래 모습 중 하나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결합이다. 앞으로는 모든 사물에 인공지능이 내장되어, 사물 스스로 지능적으로 역할하며, 그 사물 간의 거래는 인간의 개입 없이 블록체인이 처리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것은 중앙 중개기관을 없앨 뿐 아니라, 이로 인한 경제력의 편중까지 줄일 수 있다.
인터넷도 처음에 수평성·개방성의 원대한 목표에서 시작되었지만, 중간 과정에서 그 목표는 무시되어 버리고 지금의 괴물이 되었다. 블록체인도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겨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할까 우려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록체인이 암호 화폐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고,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져올 미래사회의 변화는 심히 창대 할 것이다.
<글 : 포스코ICT 대표이사 사장 최두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