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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특집 1탄] 수능, 대학으로 가는 길

포스코DX 2015. 11. 4. 15:26

 

 

 

 

 

1954년 대학입학시험장의 모습입니다. 넓은 광장에 많은 수험생이 한 줄씩 모여 앉아서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을 연상케 합니다. 제복을 입고 수험생들을 감독하는 관계자의 뒷모습이 무섭기만 한데요. 다른 시험장에서는 수 백 명의 수험생들이 좁은 교실 안에서 책상도 없이 문제를 풀고 있네요. 무릎에 시험지와 답안을 놓고 문제를 푸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예비고사제가 본격 운영된 1970년 입시에 처음으로 답안 채점용 전자계산기가 도입됐습니다. 그전에는 수험생의 답안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채점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때는 첨단이었지만 지금 보기엔 너무나 투박한 기계가 정겹기만 합니다.

 

 

1970년대부터는 교문에 엿을 붙이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수험생들도 시험 보기 며칠 전부터 가고 싶은 대학교 교문에 엿을 붙였는데요. 이를 막으려는 수위 아저씨와 수험생들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엿을 못 붙인 수험생들은 소심하게 한 쪽 귀퉁이에 껌을 붙이기도 했다네요.

 

 

필기시험 320점, 체력장 20점으로 구성된 학력고사 시대. 이때는 체력장 또한 대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체력장 800m 달리기를 뛰던 여학생들이 졸도했다는 신문 기사까지 있습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체력장에 임하는 수험생들의 안쓰러운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1990년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눈치 작전이 극심하던 그 시절에는 온 가족이 워키토키 까지 동원해 원서를 접수 시키는 일이 다반사였죠. 인터넷으로 대입원서를 최초로 접수한 때는 1996년으로, 당시 대우정보시스템이 원서접수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해 아주대 일반전형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인터넷 원서접수가 일반화된 요즘은 상상도 못할 진풍경입니다.

 

 

1993년에 치러진 첫 수능시험은 8월과 12월 두번 실시됐습니다.

뜨거운 삼복더위를 헤치며 8월 시험을 잘 본 학생들은 느긋했고, 잘 못 본 학생들은 한 번의 기회가 더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열공했죠. 그런데 문제는 12월 수능시험에서 터졌습니다. 엄청 어렵게 출제된 것이었죠. 다음날 3학년 교실은 울음바다로 난장판이 되었고, “이렇게 하려면 8월 한번만 보지, 왜 죽도록 고생만 시켰냐”고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시험이 연 1회로 축소되었다는 웃픈 사연이 있습니다. ㅜ.ㅜ

 

 

 

 

 

 

예나 지금이나 시험 당일에도 실수하거나 지각하는 학생들은 꼭 있기 마련. 작년에는 서울시 강동구에 있는 광문고에 가야 할 학생이 경기 광명시 광문고로 잘못 찾아갔다가 수능본부의 배려로 광명 광문고에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광명 광문고는 여학생만 시험을 치르도록 지정됐는데 남학생으로 유일하게 홍군이 시험을 봤다는군요.ㅋㅋ 수험표를 집에 놓고 와 경찰이 대신 집에 가서 챙겨다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험 시간에 임박해 경찰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고사장에 긴박하게 도착하는 장면은 TV 뉴스의 단골 화면이죠. 11월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여러분 올해 이런 실수는 절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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